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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윤(衡允):급사중공(給事中公)
급사중공 형윤의 후손 세장지. 경북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 지동(池洞)

동정 배융교위(同正陪戎校尉) 엄(嚴)의 아들이고 급사중공파의 파조(派祖)이다. 급사중(給事中)은 고려 때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종4품직인데 중사(中事)라고도 하였으며 조선조의 정4품직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과 같은 직임이다. 대중대부(大中大夫)의 품질(品秩)인데 문종(文宗:1046~1083) 때에 중사로 개칭하고 충렬왕(忠烈王) 24년, 1298년에 급사중으로 회복하고 충선왕(忠宣王)이 폐지했다가 공민왕(恭愍王) 1년, 1352년에 다시 중사로 두었다가 곧 폐지하였다. 그래서 공이 이 벼슬을 한 것은 충렬왕 시대이며 또 그 관직이 전서(典書)였다고도 한다. 전서는 상서(尙書)와 같고 조선조의 정2품 판서(判書)인데 고려조에서는 정3품의 경대부(卿大夫)였다. 그러나 공이 어떤 부사(部司)의 전서를 하였는지를 모르고 이를 행직(行職)하였는지 여부도 명증되지 않아 호칭을 전서공이라고는 하지 않고 급사중공으로 부르고 있다.
공의 계대(系代)는 안동 권씨의 대동보(大同譜)에서 오래도록 미상(未詳)으로 내려왔다. 처음 급사중공파가 대동보에 입록된 것은 영조(英祖) 10년, 1734년의 갑인보(甲寅譜)부터이다. 이때에 공이 시조의 7세손 교위공(校尉公) 염(廉)의 후손인 것은 알았으나 그 이하로 공까지 수대(數代)의 계세를 모르기 때문에 당시 12개 대파(大派)의 말미에 별보(別譜)로 입록했던 것이다. 이후 1907년의 정미보(丁未譜)에 이르러 공이 시조후 10세의 제4대파조 복야공(僕射公) 수홍(守洪)의 손자로 계고(稽考)되어 시조후 12세로서 복야공파에 흡수되어 들어갔다. 이것이 1961년에 발간한 신축보(辛丑譜) 등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어 오다가 1982년의 임술보(壬戌譜)에 이르러 그 계대를 새로이 계고하여 공의 부친 교위공 엄(嚴)의 존재를 밝혀내고 교위공 엄이 시조의 7세손 염(廉)의 손자이며 호장공 이여(利輿)의 아들임을 알아냈는데 제차는 알 수 없어 호장공의 7남 가운데 계차(季次)로 입록하니 급사중공이 안동 권씨 10세 15대파의 하나로서 그 10번째파가 된 것이다. 공을 복야공 수홍(守洪)의 손항(孫行)으로 계고한 정미보와 갑자파보(甲子派譜) 등에 이르기까지 공에 관해 '형윤고(衡允考)'라 통칭하던 여러 주기(注記)를 보면 이러하다.
(이하 생략)

참고문헌 : 태사공실기 1348쪽에서 발췌

 

 

 






참고문헌:태사공실기
1348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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