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에 대한
일반상식
一般常識
|1.단일본|2.득성유래|3.병기달권~|4.권은 권세~|5.최초의 족보|6.근심원원|7.권씨의 파|8.촌수와 항렬|9.권성의 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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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權氏)는 단일본(單一本)인가?

한국의 권씨는 모두 본관(本貫)이 하나라고 합니다. 본관이란 본디 성씨가 발상한 고향입니다. 그곳이 경상북도(慶尙北道) 안동(安東)이라서 안동권씨(安東權氏)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권씨가 단일본이라면 우리나라에는 안동권씨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꼭 안동권씨 하나의 명칭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영가(永嘉)나 화산(花山) 등으로 권씨의 본관을 일컫는 수가 있습니다. 영가와 화산은 다 안동의 옛이름이니 안동의 이칭(異稱)이 될 뿐이지 그렇게 부른다고 본관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개성(開城)을송도(松都)나 개경(開京)·송경(松京)·송악(松嶽) 등으로 불러도 다 개성을 일컫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천권씨(醴泉權氏)는 이와 다릅니다. 경북 예천을 본관으로 하는 권씨이기 때문입니다. 본디 예천권씨의 조상은 성이 흔(昕)씨였습니다. 그런데 고려(高麗) 29대 충목왕(忠穆王)의 이름이 흔(昕)으로서 즉위하니 국휘(國諱)가 되어 이를 쓸 수 없게 되었으므로 왕명(王命)에 따라 그 외가(外家)의 성 권씨로 바꾸게 되고 본관은 그대로 예천으로 하니 예천권씨가 되었습니다. 그 시조(始祖) 권섬(權暹)은 안동권씨의 시조 태사공의 10세외손(世外孫)이 되는데 그 어머니가 권씨일 뿐만 아니라 증조모(曾祖母)와 5대조모도 권씨였습니다. 이 예천권씨와 안동권씨는 동성이본(同姓異本)이자 내외손(內外孫) 관계에 있으므로 지금까지 통혼(通婚)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예천권씨가 주로 경북의 예천지역에서만 세거(世居)하여 왔고 인구도 안동권씨의 약 3백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게 알려지지를 않은 것입니다. 또 양주권씨(楊州權氏)가 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른 이름은 안동권씨의 정승공파(政丞公派)인데 고려 충정왕(忠定王) 때 세자 시절의 공민왕(恭愍王)을 따라 귀화한 중국인 학사 권상재(權尙載)가 안동권씨 태사공의 14세손인 정헌공(正獻公) 왕후(王煦)의 사위가 되면서 왕상좌(王上佐)로 임금에게서 사성명(賜姓名)을 받으니 그 후손을 왕상좌파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조(朝鮮朝) 개국 후에 정헌공 왕후의 손자대에서 고려의 국성(國姓)인 왕씨에서 본디의 안동권씨로 복성(復姓)하였는데 왕상좌파도 고려의 충목왕이 권상재를 총애하여 왕씨로 사성하고 왕후의 사위만이 아닌 아들이 되게 한 뜻에 따라 정헌공의 본손(本孫)이 되니 예천권씨와 달리 안동권씨의 외손이 아닌 본손으로 입적(入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양주권씨라 세칭(世稱)한다고 해서 양주가 정승공파의 세거지이지 본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정승공파와는 우리 모두가 다 계촌(計寸)이 되고 통혼을 하는 따위는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이상과 같이 예천권씨와 정승공파는 비슷한 시기에 왕명(王命)에 따라 탄생하였고 안동권씨의 외손인 것도 같은데 전자는 동성이본으로 그 독립성을 유지했고 후자는 정승공 왕상좌가 고려인으로 귀화한 것처럼 그 후손도 권씨의 외손에서 본손으로 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예천권씨가 이처럼 엄연히 있으니 모든 권씨가 단일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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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에 대략 서술한 것은 2000년 7월 현재 안동권씨종보 '능동춘추陵洞春秋'의 편집인으로 있는 권오훈權五焄이 지금까지 세전해오는 각종 문헌을 참고하고 연구하여 종합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 보충하고 고쳐야 할 내용이 있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여러 의견도 수렴하여 바로잡으며 수윤修潤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글에 대한 저작권은 안동권씨대종보사에 있으므로 안동권씨종보사로부터의 문서로 된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떠한 형태나 방법으로도 그 내용을 옮겨다 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