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에 대한
일반상식
一般常識
|1.단일본|2.득성유래|3.병기달권~|4.권은 권세~|5.최초의 족보| |6.근심원원|7.권씨의 파|8.촌수와 항렬|9.권성의 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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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기달권(炳幾達權)과 반경합도(反經合道)

이처럼 우리 안동권씨가 탄생하게 된 것은 고려 태조가 태사공에게 사성(賜姓)을 해서인데 이때 고려 태조가 태사공에게 성을 내리면서 한 말이 넉 자로 요약되는 병기달권(炳幾達權)입니다. 병기달권이란 기미(幾微)를 밝게 살펴 권도(權道)에 통달한다는 뜻인데 철학적으로 의미가 매우 심장한 말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권도를 달리 반경합도(反經合道)라고도 합니다. 이를 풀이하면 경법(經法), 즉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돌아와 도리에 합치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반(反)자를 돌아온다는 뜻으로 풀어야 하는데 반대된다는 뜻으로 풀어 반경합도를 대경대법에는 반대되나 도리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오역(誤譯)해 놓는 수가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중대한 실수이자 망발입니다. 권도(權道)란 어디까지나 크고 곧은 길과 같은 대경(大經)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항상 크고 곧은 길로만 걸을 수는 없는 것처럼 세상에서는 권도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부득이한 경우에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대처하는 일종의 편법(便法)이 권도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쓰는 것은 지극한 도리를 아는 성현(聖賢)이나 가능한 것이지 아무나 함부로 쓰면 혼란과 반역이 속출하여 세도(世道)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걱정해서 옛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맹자(孟子)는 일찍이 권도에 대해서 말하기를 '수(嫂)(형제의 아내)가 물에 빠졌을 때는 손을 뻗어 건지는 게 권(權)(임시응급)인데 무릇 권이 도(道)가 되는 것은 변사(變事)(변고의 사태)를 이로써 구제하는 바이며,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지 않기도 해야 하거니와 [사후에는 반드시] 경법(經法)으로 돌아와야 선(善)이 되는 것이니 이를 일컬어 권도(權道)라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권도를 행할 때에는 기미를 밝히 살펴 행하고 행한 뒤에는 반드시 경법으로 돌아와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역(逆)이 되는 것입니다. 또 반경(反經)에 대해서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 '권(權)이란 무엇인가? 경(經)으로 돌아온 연후에 선(善)한 것이다' 하였고 '사기(史記)'의 자서(自序)에서 사마천(司馬遷)은 '발연(勃然)히 반경(反經)하여 권에 합치되고 상도(常道)로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에서는 '군자는 경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경이 바르면 서민庶民이 흥하고 서민이 흥하면 여기에서 사특(邪慝) 한 것이 없어진다' 하고 그 주(註)에서 해석하기를 '반(反)은 돌아간다는 것이고 군자가 국가를 다스림에 상경(常經)으로 돌아가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로 교화가 이루어진다고 일컫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권도를 쓰는 것은 위태로우므로 성현만이 이를 써야 하고 쓸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쓰는 사람은 성현이고 올바로 쓴 사람 또한 성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뜻을 세우는 것은 가하여도 도(道)에 나가는 것은 가하지 못하고 도에 나가는 것이 가하여도 권(權)을 행하는 것은 가하지 못하다.' 또 정자(程子)는 '한당(漢唐) 이래로 권도를 아는 자가 없었다'고 하였고 주자(朱子)는 '권도란 성인이 크게 쓰는 것이니 성인이 아니면 능히 행할 수가 없고 하늘을 몸받아 도를 행하는 자가 아니면 능히 권(權)을 행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무나 행할 수가 없고 또 행해서도 안되는 어려운 권도를 태사공은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범상한 사람이 행할 수 없는 권도임을 극명히 인정한 것이 고려 태조이며 그래서 병기달권(炳幾達權)의 넉자로써 정의하고 권씨로 성을 내린 것입니다. 고려 태조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에게 성을 내린 군주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태사공에게 내린 권씨의 성처럼 특이한 사연과 의미로 성을 부여한 것은 없습니다. 안동권씨의 성자(姓字)에는 일반 성씨의 글자와 다른 내력과 특성과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의 성씨에서도 이처럼 철학적인 명제를 띤 성씨가 탄생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그 명제란 어떤 명분 앞에서 대의를 가리고 운명을 택하는 권도의 응용은 성현의 경지에 이른 이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병산대첩(甁山大捷) 당시에 내린 시조 태사공의 결단은 그래서 한 시대의 역사 정신으로 평가해야 되거니와 이같은 성씨의 특성으로 인해 우리 권씨는, 대대로 후손이 한결같이 성품이 곧고 강건하며 어떤 일에 대처하여 비굴하거나 저열하지 않아 우리 겨레의 중심적 기질로 바탕을 이루며 1천여년 동안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주역으로 많은 역할을 해왔고 그 자취가 여러 문헌으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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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에 대략 서술한 것은 2000년 7월 현재 안동권씨종보 '능동춘추陵洞春秋'의 편집인으로 있는 권오훈權五焄이 지금까지 세전해오는 각종 문헌을 참고하고 연구하여 종합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 보충하고 고쳐야 할 내용이 있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여러 의견도 수렴하여 바로잡으며 수윤修潤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글에 대한 저작권은 안동권씨대종보사에 있으므로 안동권씨종보사로부터의 문서로 된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떠한 형태나 방법으로도 그 내용을 옮겨다 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