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에 대한
일반상식
一般常識
|1.단일본|2.득성유래|3.병기달권~|4.권은 권세~|5.최초의 족보|6.근심원원|7.권씨의 파|8.촌수와 항렬|9.권성의 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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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가장 먼저 족보를 만들었는가?

안동권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族譜)를 만든 것이 자랑입니다. 그것이 '성화보(成化譜)'라는 한국 최초의 족보인데 이조 성종(成宗) 7년 병신(丙申), 서기 1476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때가 중국 연호(年號)로 명(明)나라 헌종(憲宗)의 것인 성화(成化) 12년이었는데 우리가 지금 서기(西紀)를 쓰듯이 당시 중국 연호를 썼기 때문에 이 시기를 성화연간(成化年間)이라 하고 성화연간에 나온 족보라는 뜻으로 '성화보'라 세칭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달리 '성화병신보(成化丙申譜)'라고도 하는데 본디 명칭은 '안동권씨세보(安東權氏世譜)'입니다. 이 성화보가 나온지 1백여년 뒤에 문화유씨(文化柳氏)의 '가정보(嘉靖譜)'가 나왔습니다. 가정은 명나라 세종(世宗)의 연호입니다. 이로부터 각 성씨의 족보가 잇따라 나와 우리나라로 하여금 세계에서 따를 자가 없는 족보의 선진국이 되게 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족보로써 우리나라를 이길 나라와 민족은 세계에 없습니다. 중국에서 성씨보(姓氏譜)는 대개 우리나라보다 4세기쯤 앞선 11세기 북송(北宋) 시대에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 방면에서 뒤에 훨씬 더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처음에는 왕가(王家)의 계보(系譜)만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왕가의 계보는 단선적(單線的)인 것이어서 이를 족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고려(高麗) 시대로 들어와서 백성이 모두 성씨와 계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려는 문화 정책을 펴 이것이 없는 자는 시험을 보아 관리 등으로 취직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자기의 계대(系代)를 증명하는 세계표(世系表)를 만들어 가지게 되었는데 이를 가첩(家帖)이라는 등으로 불렀습니다. 이러한 가첩 또는 가승(家乘)은 각자가 그 직계(直系)만을 단선으로 적어 내려오고 그 방계(傍系)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모두 모아 종합해서 가까운 방계는 물론 안동권씨 전체를 총괄하는 '족보'를 만들어 책자로 출간한 것이 '성화보'입니다. 이것은 인류사적으로 의의가 아주 큰 발명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계보를 최초로 민주화시킨 쾌거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민족은 족보를 제2의 호적으로, 때로는 세속의 호적보다 한 차원 높은 불변의 기록으로 숭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정부나 학계에서는 이같은 족보를 괄시하며 한국인의 버려야할 인습처럼 생각하여 마지 않습니다. 급속히 변화하는 세대(世代)는, 특히나 외래종교인들의 경우는 아직도 족보를 챙기는 우리 겨레의 습성을 부끄러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일본 신민화(臣民化)하려던 일제의 암흑기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출판된 서적이 족보였습니다. 이처럼 족보에는 우리의 근본과 주체를 지키려는 얼이 서려 있습니다. 지금 외세와 외래 정신의 대변자와 같은 지식인·학자·교육자·정치사회지도자들이 아무리 족보를 백안시하고 퇴출시키려 하여도 우리나라에서 절대량의 족보는 계속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족보 선진국의 명성을 좀체로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물론 남의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의 말처럼 족보가 이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보와 문화가 무형에서 유형의 가치를 발휘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이 관념이 큰 괴력을 발휘하여 남이 따를 수 없는 민족의 저력이자 하나의 국가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원천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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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에 대략 서술한 것은 2000년 7월 현재 안동권씨종보 '능동춘추陵洞春秋'의 편집인으로 있는 권오훈權五焄이 지금까지 세전해오는 각종 문헌을 참고하고 연구하여 종합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 보충하고 고쳐야 할 내용이 있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여러 의견도 수렴하여 바로잡으며 수윤修潤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글에 대한 저작권은 안동권씨대종보사에 있으므로 안동권씨종보사로부터의 문서로 된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떠한 형태나 방법으로도 그 내용을 옮겨다 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