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에 대한
일반상식
一般常識
|1.단일본|2.득성유래|3.병기달권~|4.권은 권세~|5.최초의 족보|6.근심원원|7.권씨의 파|8.촌수와 항렬|9.권성의 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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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權姓)의 사시(四始)'란 무엇인가

사시(四始)란 네 가지의 시작이란 뜻입니다. 권씨가 조선조에 들어와 네 가지 일을 타성에 앞서 비롯했다고 해서 생긴 말입니다. 이것을 세상에서 권씨의 자랑으로 일컬어왔는데 대체로 타성간에도 이를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기로사(耆老社)의 시(始)'입니다. 기로사란 조선 개국초에 삼달존(三達尊)이라 해서 연치(年齒)와 덕망과 작위(爵位)가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 지위가 문관(文官)이면서 정2품 이상 경대부(卿大夫)가 되는 70세 이상의 노인을 우대하는 모임으로 만든 것인데 임금도 그 나이가 되면 입회하기로 해서 태조(太祖)가 몸소 함께 하니 관부(官府) 서열의 으뜸이 된 경로당(敬老堂)입니다. 거기에 시조의 15세손 정간공(靖簡公)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 권희(權僖)공이 검교 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으로서 연치가 가장 높아 수좌(首座)에 오르니 기로사를 으뜸으로 창시한 이가 된 것으로 일러지는 일입니다. 둘째는 '문형(文衡)의 시(始)'입니다. 문형은 문학을 저울질한다는 뜻인데 예문관(藝文館)·집현전(集賢殿)·홍문관(弘文館) 등의 대제학(大提學)을 달리 부르는 말입니다. 당대의 석학이 앉는 자리인데다 임기도 다른 직위와 달라 굉장히 명예로운 벼슬입니다. 그런데 조선조 최초의 문형을 시조의 16세손이고 정간공의 아들인 양촌(陽村) 문충공(文忠公)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근(權近)공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권씨가 학자와 선비의 집안이라는 것을 명증한 셈이었습니다. 셋째는 '호당(湖堂)의 시(始)'입니다. 호당은 독서당(讀書堂)인데 세종(世宗) 때 우수한 문관을 연수시키기 위해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만들어 과거에 급제해 들어온 관원의 무리에서 빼어난 자를 선발해 장기 유급휴가를 주고 거기에 들어가 공부에 몰두하게 한 곳입니다. 여기에 뽑혀 들어간다는 게 또한 불후의 명예인데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이 선발한 조선조의 호당 1기생 4인 중에 17세손으로 정간공의 손자인 일재(一齋) 권채(權採)공이 제1인으로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호당 또한 권씨가 비롯했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족보(族譜)의 시(始)'입니다. 우리 권씨의 '성화보(成化譜)'가 우리나라 족보의 효시(嚆矢)라는 것은 앞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양촌의 아들 지재(止齋) 문경공(文景公) 권제(權제)공이 부친의 뜻을 받들어 만들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니 그 아들인 18세손 소한당(所閑堂) 익평공(翼平公) 권람(權擥)공이 초고(初稿)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미처 발간을 못하고 별세하니 그 고종제(姑從弟)인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외가의 이처럼 큰일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거기에 서문(序文)을 써 붙이고 권씨의 관향인 안동부(安東府)로 보내 그곳 부사(府司)에 있는 태사묘(太師廟)에서 이를 보완해 발간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권씨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낸 족보의 창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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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에 대략 서술한 것은 2000년 7월 현재 안동권씨종보 '능동춘추陵洞春秋'의 편집인으로 있는 권오훈權五焄이 지금까지 세전해오는 각종 문헌을 참고하고 연구하여 종합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 보충하고 고쳐야 할 내용이 있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여러 의견도 수렴하여 바로잡으며 수윤修潤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글에 대한 저작권은 안동권씨대종보사에 있으므로 안동권씨종보사로부터의 문서로 된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떠한 형태나 방법으로도 그 내용을 옮겨다 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