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회부정공파(副正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통의(通義):부정공(副正公)


부정공 통의의 단소. 경북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 눌곡(訥谷)에 있다. 

호장공(戶長公) 이여(利輿)의 제5남 취정(就正)의 아들이고 시조후 10세 15대파의 여덟 번째인 부정공파의 파조(派祖)이다. 관작이 신기 도령(神騎都令)으로서 식록부정(食祿副正)이어서 부정공(副正公)으로 호칭한다. 옛 보서에는 공의 관작이 부정(副正)이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그 현손서(玄孫 )인 위위시 주부(衛尉寺主簿) 안동 김희(安東金熙)의 집 보첩(譜牒)에서 고증 자료가 나와 현재와 같은 직함을 알게 되었다. 신기 도령은 신기반(神騎班)의 도령중랑장(都令中郞將)이고 신기반은 고려 숙종조(肅宗朝) 이후 지방 고을에 둔 예비군으로서 문무양반(文武兩班)에 백성노례(百姓奴隷)에 이르기까지 마필(馬匹)을 가진 장정으로 편성한 군대이며 도령중랑장은 그 수장(首將)이다. 식록 부정은 문종조(文宗朝)에 지방 고을에 베푼 향직으로서 녹봉(祿俸)에 관한 사무를 맡는 직임이며 정(正)·부정(副正)·사(史)가 있는데 그 부정을 지낸 것이다. 이로써 공이 관향(貫鄕) 안동 지역에서 문무의 향직을 사환(仕宦)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그밖의 기록이 없다.

아들은 호장 균필(均弼)과 별장(別將) 균량(均亮)을 두었다. 균필이 독자 경보(景輔)를 낳으니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고 판이부사(判吏部事)와 상장군(上將軍)을 겸했다. 그 아들 휴(休)는 전의시 주부(典儀寺主簿)로서 직수문전(直修文殿)에 추증되고 손자 정평(正平:正中)은 판도 정랑(版圖正郞)으로서 공조 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증손자 덕생(德生)은 증 동지중추(贈同知中樞)이고 백종(伯宗)은 검교 한성윤(檢校漢城尹)으로서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추증되었으며 좌찬성(左贊成)으로 가증(加贈)되었다. 그 현손(玄孫) 자형(子衡)은 가선대부 병마단련사(兵馬團練使)이고 을형(乙衡)은 별시(別侍)이고 전(專)은 자헌대부(資憲大夫) 중추원사(中樞院事)로서 증 영의정(贈領議政)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경혜공(景惠公)이고 촌(忖)과 기( 奇)는 현감(縣監)이다. 균량의 1남 세형(世衡)은 정랑(正郞)이고 손자 공(功)은 추봉(追封) 판도 판서(版圖判書)이며 공무(公茂)는 호장(戶長)이다. 증손 녹(祿)은 첨의 찬성사(僉議贊成事) 상호군(上護軍)이고 현손 면(勉)은 상호군이다.

1999년 기묘에 공의 6대종손 병마단련사 자형(子衡)의 사패지(賜牌地)로서 그 세거 종가(世居宗家)가 있는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臥龍面佳野里) 눌곡(訥谷:늪실)에 공의 제단(祭壇)을 설하고 기적비(紀蹟碑)를 세웠으며 그 단하(壇下)에 눌곡재(訥谷齋)를 건립하였다. 이와 관련한 기적비문 등 각종 문헌은 다음과 같다.

(이하 생략)

   

참고문헌:태사공실기 

1,335쪽에서 발췌